많은 사람들은 위기를 갑작스러운 사건이라 생각한다. 어느 날 예기치 않은 문제가 터지고 조직은 그 순간부터 위기에 대응하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 대부분의 위기는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위기는 조용히 시작된다. 작은 신호들이 반복되고 불편한 데이터가 쌓이며 조직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한다. 문제는 이 신호들이 너무 작기 때문에 종종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된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차이는 위기가 발생한 이후의 대응 속도가 아니라 위기가 발생하기 전 그 징조를 읽는 능력에서 나타난다. 감각 있는 리더는 위기가 터진 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전에 신호를 포착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사람이다.
위기 관리 리더십 시리즈 글 더 보기
#1. 위기에 드러나는 진짜 리더십
#2. 위기 징조 읽는 법
#3. 위기 속 리더의 언어
#4. 실패를 기회로 바꾸는 리더십
보잉이 놓친 위기의 신호
2024년 1월 알래스카항공의 보잉 737 맥스 9 항공기에서 동체 패널이 공중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대형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 사건은 글로벌 항공 산업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갑자기 발생한 사고가 아니었다. 이미 2018년과 2019년에 같은 기종의 항공기가 추락하면서 346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 이후 내부 직원들과 품질 조사관들은 수년 동안 안전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이러한 경고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사고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의 문제로 분석됐다. 안전보다 납기 일정이 우선 시 되고 내부 경고가 무시되며 현장과 경영진 사이의 거리감이 커지는 문화적 변화가 오랜 시간 축적된 것이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위기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
위기의 징조는 세 가지 채널에서 나타난다
위기의 전조 신호는 대부분 세 가지 영역에서 나타난다. 데이터, 조직 분위기,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데이터 속에 숨어 있는 경고
가장 눈에 띄는 신호는 숫자에서 나타난다. 고객 불만 증가, 직원 이직률 상승, 품질 오류 반복, 프로젝트 지연 증가 등. 이런 지표는 조직의 문제를 가장 먼저 드러낸다.
하지만 많은 리더가 좋은 숫자에는 관심을 두지만 불편한 숫자는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는 실수를 한다. 특히 중요한 지표는 내부 보고 건수다. 보고가 줄어드는 것은 문제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문제를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조직의 체념을 의미할 수 있다.
이것은 조직의 자정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신호다.
조직 분위기의 변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회의에서 발언이 줄어든다, 핵심 인재가 의욕을 잃는 다던가 불편한 주제가 공식 회의에서 사라진다던가 문제가 복도 대화에서만 오가는 등. 이러한 변화는 조직 심리학에서 '침묵의 확산'이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불편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팀 전체가 침묵하는 법을 학습한다. 결국 조직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감각 있는 리더는 회의에서 조용한 조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왜 아무도 말하지 않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패턴의 변화
세 번째 신호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나타난다. 메일 응답이 느려지거나 회의에서 표현이 모호해진다 혹은 부서 간 협력이 줄어들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언어가 늘어나는 등의 변화다. '그건 우리 팀 일이 아닙니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다면 조직 내부의 신뢰 구조가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또한 공식 메시지가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변하는 것도 위험 신호다. 이는 구성원들이 솔직한 의견을 표현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됐다는 의미일 수 있다.
리더가 징조를 놓치는 세 가지 이유
신호가 있어도 많은 리더가 이를 놓친다. 여기에는 세 가지 대표적인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확증 편향이다. 리더는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에 더 주목한다. 조직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정보 거품이다. 리더 주변에는 좋은 소식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팀원들은 리더가 나쁜 소식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분주함의 함정이다. 리더가 너무 바쁘면 작은 신호는 노이즈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기의 초기 징조는 대부분 매우 작고 미묘하다. 리더의 일정이 가장 바쁠 때 위기는 가장 조용히 자라난다.
감각 있는 리더의 초기 대응 원칙
징조를 발견했다면 다음은 대응이다.
첫 번째 원칙은 빠르게 확인하되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의 신호만으로 상황을 단정하면 안 된다. 하지만 확인 과정이 길어지면 대응 시점을 놓칠 수 있다. 따라서 정보 수집과 행동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현장에 직접 가는 것이다. 일본 경영에서 말하는 겐치 겐부쓰라는 개념이 있다. 실제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하라는 의미다. 리더가 직접 현장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조직에 강력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문제를 진지하게 보고 있다는 신호다.
세 번째 원칙은 나쁜 소식을 환영하는 태도다. 불편한 정보를 전달한 직원이 감사의 말을 듣는 조직은 건강하다. 반대로 불편한 정보를 전달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 조직은 위기를 피할 수 없다.
실전 활용 팁: 징조를 읽는 네 가지 루틴
리더는 위기 감지 능력을 훈련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루틴이 도움이 된다.
첫 번째는 약한 신호 메모다. 매주 '지금 조직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왜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두 번째는 역보고 회의다. 성과 보고 대신 문제와 우려만 이야기하는 회의를 따로 운영한다.
세 번째는 비공식 접점을 유지하는 것이다. 공식 보고 라인에서는 솔직한 정보가 올라오기 어렵다. 점심 식사나 짧은 대화에서 더 중요한 정보가 나온다.
네 번째는 미래 역산 질문이다. '3개월 뒤 어떤 문제가 터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정기적으로 던진다. 이 질문은 현재의 작은 불편함이 미래 위기의 씨앗인지 확인하게 만든다.
위기 감각은 예언이 아니라 태도다
징조를 읽는 능력은 특별한 직관이 아니다. 그것은 세 가지 태도의 결합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 불편한 정보를 외면하지 않는 정직함,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찰력이 그것이다.
위기는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리더의 역할은 사건을 막는 것이 아니라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위기관리 리더십은 위기 대응 능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위기를 미리 감지하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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